<42> 아! 살수대첩

“수나라 오랑캐들을 죽여라. 한 놈도 강을 건너게 해선 안 된다.”

고구려 철갑중기병을 지휘하는 장수의 명령이 떨어졌다. 강기슭에 숲속에 숨어있던 고구려 기병대가 나타나자 별동대는 눈이 뒤집혔다. 별동대는 서로 먼저 도망치려다가 고구려군의 칼을 맞고 절명하거나 강물로 뛰어들었다가 화살을 맞기도 했다. 별동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문술은 자신을 호위하는 친위부대 백여 명과 함께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문술은 도망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지만 끝내 일록은 보이지 않았다.
*이각 – 일각이 15분이니 이각은 30분이 된다.

우중문의 휘하의 살아남은 별동대 10만 명도 삼록과 구록의 뒤를 따르며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이각(二刻)을 달려갔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고구려군은 1인당 화살 50개를 전통(箭筒)에 담아 대기하고 있었다. 이각이 지났을 때 우중문 휘하의 별동대는 거의 쓰러진 상태였고 용케도 살아남은 자들은 살수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도 날아드는 화살을 맞고 절명하고 말았다. 우중문과 휘하 장수들은 정신이 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지리산가리산 허둥대기만 했다.

“삼록 대장과 구록 대장은 어디 있느냐? 나를 호위하라. 내가 무사해야 한다. 졸병들은 죽거나 말거나 신경 쓸 거 없다. 내가 살아서 황제 폐하께 이번 진군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려야 한다.”

“대장군, 녹족 형제는 고구려군과 전투를 하는 중인가 봅니다.”

“그럼, 신세웅이는 어디 있느냐?”

“신세웅 장군은 고구려군이 쏜 화살을 맞고 전사했습니다.”

“뭐라? 세웅이가 죽었단 말이냐? 여봐라 녹족 형제를 찾아와라. 이제 내가 믿을 부하는 녹족 형제뿐이다.”

우중문이 ‘삼록’, ‘구록’을 찾았지만, 녹족 형제는 보이지 않았다. 우중문은 자신을 호위하는 친위부대에 둘러싸여 강을 건너가려 했다.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고구려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고구려군은 싱겁게 끝난 전투에 모두 서름한 표정이었다. 살수를 건너려다 별동대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지휘관들을 포함하여 약 일만여 명의 기병(騎兵)만 겨우 강을 건너 북쪽으로 도망쳤다.

살수에서 압록수까지는 대략 4백 리가 넘는 거리였다. 살수는 수나라 별동대의 시체로 뒤덮였고, 강물은 피로 물들었다. 고구려군이 죽은 수나라 병사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맨발이었고, 뼈에 살가죽만 남아있는 병사도 상당수였다. 시신 한 구에 화살 10발 이상이 꽂혀 있었다. 고구려 고대원(高大元) 태왕 즉위 23년 7월 하순 고구려군은 수나라 별동대 대부분을 살수에 수장시켰다.

별동대들이 가지고 있는 병장기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작은 칼 하나가 전부였다. 도망치는 마당에 큰 병장기는 도움이 안 되니 버린 것 같았다. 살수 주변에서 노획한 물건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살수가 다시 조용해졌다. 강변과 강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랑캐 시체에 까마귀와 독수리 떼가 몰려들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새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피 냄새를 맡은 늑대와 이리 등 야수들도 떼를 지어 살수로 몰려들었다. 살수에는 밤새도록 오랫동안 굶은 금수(禽獸)들이 먹이를 두고 다투는 소리만 요란했다.

“저기 오랑캐들이 온다.”

살수에서 살아 남은 수나라 오랑캐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이틀 반나절 만에 압록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이미 을지문덕이 배치한 고구려군이 지키고 있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탈진한 상태로 간신히 압록수에 도달했지만, 추격해오는 고구려 기병들을 완전히 따돌릴 수는 없었다.

진퇴양난의 처지가 된 별동대 잔당들은 우중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중문은 멀리 까치놀이 반짝거리는 압록수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는 지금의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설령, 살아서 요동 대본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황제 양광이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 같았다.

“녹족 형제는 어디 있느냐?”

우중문이 자신을 따르는 여러 장수에게 물었다.

“대장군, 녹족 삼 형제들도 살수에서 모두 목숨을 잃은 모양입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볼 수 없었습니다.”

“저런, 저런. 참으로 아까운 인재들이었는데, 전사하다니 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구나. 잠시 행군을 멈추고 녹족 형제의 명복을 빌자.”

옆에 있던 우문술이 우중문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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