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짜다
황영기

몸살 난 집을 데리고 경주로 가자
빈 노트가 스케치하기 전 살며시 문을 열어
비에 젖어도 바람에 옷이 날려도 좋아, 아무렴 어때
나갈 때 잊지 말고 우산을 챙겨줘
돌아온다는 생각은 깊은 장롱 속에 넣어두고
먹다 만 밥은 냉동실에 혼자 두고
머리는 세탁기에, TV는 버리고 발가락이 듣고 싶은 곳으로
실선으로 그려진 옷소매에 손을 넣고 버스에 올라
별이 기웃거리기 전에 도착해야 해
능소화 꽃잎 같은 사연을
페달에 담아 바람에 날리자
친구가 필요할 거야 그럴 때는 친구를 잊어
무덤 속 주인이 말했다
지퍼처럼 잎을 내렸다 올리고
꽃은 단추처럼 피었다 떨궈줘
발자국이 세든 골목에 비릿한 바닥을 핥을 때
날실 머리는 잡고 씨실의 허리를 감으며 하나, 둘 잘라줘
촉촉한 파스타에 울던 사람, 발을 만져봐 배가 고플 거야
바늘로 빵을 찌르는 제빵사의 손길
먹줄 실 뽑아 바닥을 튕기는 거미의 솜씨
어긋난 선을 바늘이 엮어주면
옷이 한눈에 주인을 찾아, 보란 듯이 걸쳐 줄래, 그거면 충분할 거야
버스는 늘 먼저 떠나
박물관 뒷길은 혼자된 연인만 걸어가지
거기 길이 끝난 곳에 당도하면
길과 길을 잇는 재봉틀이 떠오를 거야
한 벌의 옷을 짓고 거기에다 누군가 몸을 넣는다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머리끝에 꽃이 달리잖아

202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서 시로 당선된 작품을 읽는다.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앞으로도 밥을 먹듯이 아니 휴식시간과 잘 때까지 시를 읽겠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시와 살겠다니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시를 대하였는지 엿볼 수 있겠다.

아마도 그는 직장과 가정에서도 매우 충실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가수들이 칼춤을 추며 땀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즘 시의 경향은 매우 난해하다. 내용도 표현도 애매모호한 시를 매력적이고 잘 쓴 시라고 인식하는 분위기다. 문예지에 발표된 난해한 시를 쓴 몇몇 시인들께 본인의 시가 어떤 줄거리이며 상황 전개나 추구하는 바에 대하여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시가 난해할수록 작가 자신도 내용이 모호하여 모르겠다는 시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그 시를 평한 평론가들의 해설과도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평론은 또 다른 파트이기에 달라야 정상이지만 그만큼 어려웠다는 결과이다.

음악의 경향도 박자가 빠르고 가사도 많고 난해難解해졌다. 그러나 세계적인 가수가 된 BTS는 초창기 [피 땀 눈물]과 [너 자신을 사랑해라]란 메시지가 분명한 노래를 하였다. 물론 그 가수들이 세련된 노래와 춤 실력을 다 갖추었지만 좋은 가사가 세계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주었다고 들었다.

시를 읽으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공감하여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번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들은 난해보다는 소통이 되는 시들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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