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씨 가문의 무남독녀

간밤에 내린 폭설로 천지 사방이 온통 백색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웃과 겨우 왕래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내놓고 온종일 집안에서 두문불출 했다. 귀주성(龜州城) 인근에 있는 덕실 마을은 고구려 때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마을로 주변 풍광이 매우 빼어났다. 청룡산, 검산, 팔령, 굴암산이 귀주를 감싸고 황화천과 구림천 그리고 팔령천 등이 귀주의 여러 마을을 에두르며 흐른다.

덕실 마을은 황화천이 굽이쳐 에돌아 흐르며 남서쪽으로 빠져나가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토질이 비옥하고 넓은 평야 지대가 마을 앞에 펼쳐져 있어 가을에 거둬들이는 농산물이 풍족했다. 마을 사람들은 순박하고 인심이 후해 이웃과 정을 나누며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마을에 경사가 있으면 마을 사람 전체가 자기 일인 양 달라붙어 도왔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눴다.

덕실 마을을 품고 있는 귀주는 고구려 때부터 고려 초기까지 만년군(萬年郡)으로 불리다가 성종 임금 때부터 귀주로 불리게 되었다. 동으로 태천까지 사십 리, 남으로 정주까지 사십 리, 선천까지 칠십 리, 곽산까지 육십 리, 서북쪽으로 의주까지 백여 리, 북으로 삭주까지 삼십 리, 남으로 개경까지는 팔백여 리나 떨어졌다. 귀주성의 둘레는 십 리가 약간 넘었다.

덕실 마을은 지난번 고려-거란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백여 호(戶)가 넘는 마을이었으나 전쟁 통에 마을 가옥 반 이상이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마을 사람들이라고 해야 노인들, 지난 전쟁에 나갔다가 불구가 된 남정네들, 수다쟁이 아낙들 그리고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들 등 육십여 명이 전부였다. 마을 대소사를 이끌어 갈 젊은 사람들은 두 번에 걸친 고려-거란 전쟁에서 전사하여 마을 뒷산에 유택을 마련하고 누워있다.

고려-거란의 두 번째 전쟁이 끝나고 두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마을 곳곳에는 전쟁의 잔흔이 남아 있었다. 전쟁의 흔적은 세월이 흐르면 자연 퇴색되게 마련인데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하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 가슴에 남아 있는 멍울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은 덕실 마을의 인심도 사납게 만들어 놓았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이웃 간의 왕래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그나마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와 눈싸움을 하거나 떠들고 뛰어노는 바람에 다소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설화는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여염한 소녀였다. 그는 덕실 마을에 사는 또래 벗들에 비하면 키가 한 뼘 정도 더 크고 외모도 성숙해 보였다. 설화의 성품은 어머니 홍 씨를, 체구는 무관이었던 아버지 이관(李寬)의 풍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착한 심성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마을 아낙들은 설화가 조금만 더 자라면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며 입방아를 쪄댔다.

꽃물이 비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설화는 정말로 함초롬히 핀 양귀비꽃처럼 화사하고 성숙함도 더욱 돋보였다. 마을의 또래 소녀들은 설화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질투하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은 설화에게 마음을 두면서도 엄격한 집안의 외동딸이라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설화는 이 씨 가문의 무남독녀로 집안 어른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관은 딸의 장래를 위해 외지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선생을 초빙하여 설화를 지도하도록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설화는 사서삼경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학식을 지니게 되었고, 무술의 달인인 이관은 딸에게 특별히 무술까지 가르쳤다. 설화는 마을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러나 지난번 전쟁은 설화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홍 씨 부인은 외동딸이 행여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서 설화에게 신경을 쓰며 입을 것, 먹을 것, 공부하는데 소용되는 것들을 부족하지 않도록 챙겨주었다. 홍 씨 부인은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심성이 곱고 외모 또한 깔밋했다. 그녀는 조쌀하게 보이지만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어 원로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녀는 슬하에 아들을 두지 못해 시부모에게 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숨을 죽이며 지내야 했다.

설화는 아침 일찍 마을 뒷산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가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날은 뒷산에 오르는 것이 큰 낙이었다. 간밤에 많은 눈이 내리면서 설화는 아버지 산소에도 눈이 산더미처럼 쌓였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설화는 석칠이에게 넉가래와 빗자루를 챙기게 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홍 씨 부인은 딸이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짐작하고 석칠이를 딸려 보낼 참이었다. 석칠이는 설화보다 서너 살 많은 사내로 설화네 집에서 종살이하고 있었다. 그는 체소하지만 상전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만큼 신실한 충복이었다.

“석칠아, 설화와 같이 주인어른 산소에 다녀오너라. 오래 있지 말고 일찍 돌아와야 한다. 여천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 해.”

홍 씨 부인에게 석칠이는 믿음직스러운 하인이었다. 석칠이는 설화가 걷기 편하게 앞장서서 넉가래를 밀며 눈길을 냈다. 설화는 어머니가 건넨 작은 바구니를 들고 조심스레 석칠이 뒤를 따랐다.

설화의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행여 걷다가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하인에게 웃음가마리가 될 것이었다. 저고리 소매를 약간 걷어 올리자 희고 뽀얀 팔목이 드러났다. 길게 딴 머리끝에 매단 자줏빛 도투락이 오늘따라 꽤 앙증맞아 보였다. 눈밭을 헤치며 오르는 산은 무척 신경이 쓰였다. 설화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들이 휘날리며 뽀얀 눈보라를 만들어 냈다. 왁살스러운 북풍에 눈을 잔뜩 이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우지끈 뚝딱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에 내리꽂히기도 했다. 마을 뒷산에는 이관의 무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 사람 서너 명이 나와서 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석칠이는 넉가래로 눈을 치우면서도 연신 설화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떠들어대는 모습이 더펄이나 앤생이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설화가 뒷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눈을 치우다 말고 잠시 쉬었다.

설화는 요즘 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화제의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효성이 지극하고 부지런하며 마을에서 가장 학식이 많은 인물이다 보니 자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곱게 변모해가는 설화의 모습에 사내들뿐만 아니라 아낙들도 관심을 집중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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