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전여전(父傳女傳)

“요즘 세상에 설화 같은 효녀가 또 어디 있으려고? 이관이 살아 있으면 한참 귀여움을 받고 자랄 나인데…….”

“설화가 노는 모습을 보면 사내 같은데, 얼굴을 보면 홍 씨 부인을 닮아서 그런지 당실한 것이 참으로 고와. 어린 것이 가만히 보면 마음 씀씀이도 꽤 푼푼해. 나는 여태껏 저 애가 무람없이 행동하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골풀이 하는 것을 보질 못했어. 건넛마을 최대인이 며느릿감으로 점찍어 놨다는 말도 있어. 아무튼, 저 애는 이 씨 집안에 복덩어리가 틀림없어.”

“저 애는 미구에 무등 서북면 지역에서 최고 미인이라는 소릴 듣겠어. 몸매도 낙신낙신해 보이는 것이 좀 더 크면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근동 사내들이 사족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르지. 게다가 이관이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켜놔서 이제는 사서삼경과 병법서를 달달 외운다고 하더군. 미상불, 사내로 태어났더라면 과거를 볼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니까.”

“나도 저 애가 어른들에게 시먹거나 쓸까스르는 걸 보지 못했어.”

“한 가지 흠이라면 설화가 사내들하고 어울려 전쟁놀이하는 것이지. 이관이 비겁한 거란 놈들에게 당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태 전에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설화 아버지 이관은 고려 서북면의 귀주 주진군 소속 초군의 무관이었다. 그는 팔척장신으로 도순검사 *양규의 부하로 힘이 세고 무술 실력 또한 뛰어났다. 거란군과 접전을 벌일 때 그가 말을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언월도를 휘두르면 거란군은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기 바빴다.

이관의 가문은 대대로 무관을 배출하며 나라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조상 중에는 고려 건국 시기에 군문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워 무장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었으나 후손들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고려의 지방군은 주현군과 주진군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주현군은 양계 즉, 동계와 북계를 제외한 서해도, 교주도,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에 설치된 군사 조직이고 주진군은 양계에 설치된 군사 체계였다. 고려 조정은 대동강 이남의 다섯 개 도(道)보다 대륙과 연계된 양계를 더 중요시하여 강력한 군대를 배치하였다.

북계 주진군은 동계의 주진군보다 병사의 숫자도 많았다. 그들은 초군, 정용, 좌군, 우군, 보창, 신기, 보반, 백정 등으로 구성되었다. 양계에 살고 있는 백성은 모두 주진군에 소속되어 있어서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어 군역을 수행했다.

* 양규 - 楊規, 거란의 2차 침입 때 서북면도순검사로 있었는데, 서북면 여러 지역에서 거란군을 격 퇴하였다.
* 언월도 - 偃月刀, 반달과 같이 생긴 칼에 자루가 달린 무기.

나라에 급작스러운 사변이나 전란이 발발하면 양계 백성들은 병력으로 동원되었다. 또한, 고려는 건국되면서부터 북방 지역 개척과 국토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사민정책을 펼쳤다. 대동강 이남에 살고 있던 백성을 대거 양계로 이주시켜 정착하게 한 뒤에 이들을 주진군의 구성원으로 선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려에 귀화한 거란, 여진, 발해 유민 등을 이 지역에 정착하여 살게 했다.

이관은 설화에게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시키고 수박(手搏)과 검술 그리고 활 쏘는 법도 가르쳤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설화는 마을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전쟁놀이나 말타기 놀이를 즐겼는데 언제나 설화가 대장 노릇을 하였다. 설화가 비록 소녀이지만, 또래 아이 중에서 유일하게 검을 다룰 줄 알고 활을 쏠 줄 알았다. 그 덕분에 설화가 대장이 되는 게 당연했고 아무도 불평하거나 불만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설화가 사내아이들을 이끄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닮았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홍 씨 부인은 딸이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전쟁놀이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 말렸지만, 설화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설화는 공부하다가도 무료하면 마을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전쟁놀이를 즐겼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설화 할아버지는 손녀가 사내로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장수가 되었을 거라며 안타깝게 여기곤 했다. 이태 전에 전쟁이 발발하면서 설화 할아버지는 식솔을 이끌고 *굴암산으로 피난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설화는 석칠이와 함께 아버지 산소와 주변의 눈을 말끔히 치웠다. 저고리와 치맛단이 녹은 눈에 젖어 눅눅했다. 상석이 드러나자 설화는 바구니에 든 음식을 진설하고 술을 따랐다. 설화가 공손히 절을 하자 석칠이도 따라 저승에 든 주인에게 절을 하였다. 생전에 이관은 무남독녀인 설화를 무척 귀여워했다. 그도 살아생전에는 설화가 아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설화 왔어요. 간밤에 무척 추우셨죠? 제가 석칠이하고 눈을 치웠어요. 눈이 오랜만에 많이 내려 아버지 만나러 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지기도 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금도 아버지께서 대문을 활짝 열고 집안으로 들어설 것만 같다고 하시며 눈물을 보이셔요. 어머니는 요즘 들어 아버지가 부쩍 보고 싶으신가 봐요. 밤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시문(詩文)을 읽고 또 읽으시며 소리 없이 우시기도 하셔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탕개가 풀리지 않으셨어요. 아마도 두 분의 *옥촉조화는 제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도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검술과 궁술 그리고 수박을 연습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혼자 연습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봄이 되면 굴암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우려고 해요. 그곳 산채에는 무술에 뛰어난 도인들이 여러분 계시다고 합니다. 입산하여 도인들에게 무술을 배워 아버지 원수를 갚아드릴게요.’

* 굴암산 - 窟巖山, 귀주성(현재. 평안도 구성)에서 동북쪽으로 4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산으로 팔령산 과 닿아있다.
* 옥촉조화 - 玉燭調和, 부부가 조화하는 일.

설화는 무언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설화는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이관이 집에 있는 날이면 그는 설화에게 각종 무술을 가르쳤다. 검술과 수박은 설화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종목이었다. 이관이 전사하기 전에는 설화에게 궁술과 말타기 등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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