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복수를 다짐하다

설화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자신이 딸로 태어난 것을 두고 늘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술 연마에 진력했다. 이관은 전쟁이 일어나면 북계 서북면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딸에게 무술을 가르쳐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관이 설화에게 검술과 수박을 가르쳐보니 딸이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잘 따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개를 스스로 터득할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검술은 타고난 듯 고난도 기술을 잘도 소화해 냈다.

이관은 틈만 나면 설화를 마을 뒷산으로 데리고 가서 집중적으로 검술을 가르쳤다. 그는 장백검법의 달인이었다. 자신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지도하면 설화는 그대로 따라 했다.

이관은 설화가 금방 검법을 익히는 것을 보고 대견해 하면서도 앞날이 걱정되었다. 여인이 칼을 다루는 것을 금기시하는 세상에 사내들도 익히기 어려운 검법을 쉽게 익히는 딸이 장차 엉뚱한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설화는 유서(儒書)를 많이 접했다. 글을 가르치는 여천 선생은 설화에게 효(孝)에 관한 내용을 유난히 강조했다. 아마 설화가 사내였더라면 충(忠)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을 터였다. 설화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효경에 있는 문장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로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하늘과 땅이 낳은 것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고, 사람의 행실은 효보다 큰 것이 없다. 효는 어버이를 존엄하게 모시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어버이를 존엄하게 모시는 것은 하늘과 짝 지우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효경은 유가의 십삼 경(經) 중 하나로 불리며, 공자가 제자인 증자(曾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을 후세에 엮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자들은 효경을 필독서로 취급했다.

효경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근본으로 하여 집안과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치국의 근간임을 가르치고, 효는 천지인(天地人) 등 삼재를 통해 모든 계층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고의 윤리 규범이었다.

설화에게 아버지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그 하늘이 거란 오랑캐에 의해 사라진 지금 설화는 인생의 향도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전장에서 전사한 뒤로 설화는 자나 깨나 오로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방법에 골몰했다. 아무리 분기탱천한 상태라도 지금으로서는 거란 장수 아과수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설화야, 아버지의 팔자가 그것밖에 안 되니 어쩌겠니? 너와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조용히 살아가야 한다. 너의 분한 심정은 어미도 이해한다만 우리의 처지에서 어쩌겠니? 이것도 다 우리 모녀의 팔자겠거니 하고, 마음을 단단히 비끄러매고 살자.’

‘어머니, 저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거란 오랑캐를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제가 무술을 익혀 그자를 찾아가 복수할 겁니다.’

설화는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설화는 어머니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그렇다고 무술을 모르는 어머니에게 당장 거란으로 건너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아가씨, 이제 내려가셔야죠?”

‘아버지, 우리 가문에 *망사지죄를 지은 거란 장수 아과수(阿果秀)는 나중에 제가 거란으로 가서 반드시 죽일 겁니다. 제가 사내는 아니지만, 무술을 열심히 연마하여 복수하겠습니다.

제가 아들이 아니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늘 섭섭해하셨지요? 걱정하지 마셔요. 딸이라도 얼마든지 무술을 연마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검술과 수박 그리고 궁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마하여 고려 최고의 전사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날까지 아버지께서 저를 잘 돌봐주셔요.’

설화는 전투에 임하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고 비겁한 수단으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거란 장수 아과수를 용서할 수 없었다.

* 망사지죄 - 罔赦之罪,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죄.

“아가씨, 인제 그만 내려가세요. 그만하면 주인님께서 아가씨 효성에 탄복하셨을 겁니다. 곧 여천 선생님께서 오실 시간입니다.”

설화는 마치 돌부처라도 된 듯 아버지의 묘소 앞에 앉아 움직일 줄 몰랐다. 석칠이는 설화가 찬바람을 맞아 고뿔이라도 들까 염려하였다. 햇볕에 눈이 녹자 설화의 붉은 치맛자락에 물기가 스몄다.

석칠이 몇 번이나 내려가자고 했으나 설화는 옆 사람하고 대화를 나누는 듯 중얼거리며 일어날 줄 몰랐다. 설화의 *이효상효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가 주검으로 돌아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이효상효 - 以孝傷孝,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다가 병이 나거나 죽는 일.

설화 가족이 굴암산으로 피난 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북새통이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산채는 피난민들로 만원이었고 산 곳곳에 임시 움막이 들어서기도 했다. 설화네 가족은 움막에서 며칠 생활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소문이 있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거란군이 개경을 함락시켰지만 고려 황제를 잡지 못하고 철군하는 처지가 되었다. 퇴각하는 거란군이 애전(艾田)으로 몰려오면서 양규 장군의 군대는 거란군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부대는 거란군 본진인 호가군(護駕軍)을 맞아 사투를 벌이다 전멸하고 말았다. 이관도 이때 거란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거란군이 물러가고 나서 고려 서북면 군사들이 그의 시신과 유품을 가족에게 인계하였다.

‘이무관님께서 아과수라는 거란 장수와 싸우시다 전사하셨습니다. 무관님이 늘 품에 넣고 읽으시던 시문과 거란군을 무찌르는데 사용하시던 언월도를 가져왔습니다.’

설화 할아버지는 덤덤한 자세로 아들의 주검을 맞았고 *참척의 슬픔을 감내했다. 홍 씨 부인은 지아비의 관을 끌어안고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곁에는 설화가 아버지의 주검을 보고도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희로애락을 느끼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지만, 설화는 그날의 충격적인 장면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뇌리에 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설화 아버지,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라를 위하는 당신의 애국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거란 오랑캐는 이제 우리 가문의 철천지원수입니다. 다만, 제가 당신의 원수를 갚아드릴 수 없어 그것이 원통합니다. 어젯밤 당신을 꿈속에서 뵈었을 때 저에게 자꾸만 손을 흔드시더니 이렇게 혼령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승의 미련은 훌훌 털어버리시고 편한 마음으로 가세요. 아버님, 어머님은 제가 정성껏 모시고 설화도 잘 키울게요. 당신은 편히 쉬세요.’
* 참척 - 慘慽,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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