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이씨 가문의 무남독녀

“모든 것이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소녀가 아직도 많이 민충합니다. 부단하게 노력하여 반드시 스승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네가 너무 겸손하구나. 네 나이에 이 만큼의 학식을 쌓는다는 것도 어렵단다. 네가 소양배양하지 않고 사물을 보는 눈이 재바르며, 일단 깨달은 것을 가축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너에 대한 훈육을 부탁하셨다. 지금까지 배운 병서 내용 중에서 하나만 물어보겠다. 아는 데까지 답하여 보아라.”

이관은 여천 선생에게 설화를 맡기면서 경서뿐만 아니라 병법서까지 의뢰했다. 아들이 아닌 딸에게 병법서를 공부시키는 까닭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이관의 의지와 후세를 위한 배려 때문이었다. 설화가 아들이 아니므로 안타까운 심정에서 딸에게 더욱 집착하는 심사가 있었다. 훗날 설화가 혼인해서 낳을 장래 외손을 위한 사전 보시이기도 했다.

“전쟁함에 있어서 용병 전략에 대하여 말해보아라.”

여천 선생이 설화에게 물었다. 설화는 즉석에서 스승의 물음에 답했다.

손자병법 모공편은 말한다. 전쟁함에 있어서 최상의 전략은 벌모(伐謀)이고 그 다음은 벌교(伐交)이며 그 다음은 벌병(伐兵), 최하의 전략은 공성(攻城)이다. 다시 말하자면 적과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최상의 용병 전략은 적의 계략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다음은 적의 외교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다음은 군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최하의 전략은 적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것이다.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은 마지못해 취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대개의 전쟁이 최하의 전략을 고수하는데 이는 공력을 소모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린다. 군사들을 다그쳐 개미 떼처럼 성벽을 기어오르게 하여 군사의 반수를 잃게 하고도 끝내는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것을 감히 공성전의 비극이라 말할 수 있다.

“오, 네가 이제 병법까지 완벽하게 섭렵한 듯 하구나.”

“모두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내가 덧붙여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알려주겠다. 나중에 모공편의 세세한 부분을 다시 가르칠 것이다.”

설죽은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여천 선생의 이야기를 강구었다.

“네가 경서를 배우고 병법서를 읽는 까닭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거라. 그러나 여인의 처지에서는 수신과 제가 정도면 충분하다. 아쉽고 억울할지 모르지만 치국과 평천하는 너의 후세에게 기대해도 늦지는 않을 듯싶구나. 또한, 고려에 태어났으면 자신의 뿌리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여천 선생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설화의 표정을 살폈다. 행여 설화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듣는가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고려는 천제 환인이신 *안파견님께서 *사백력에 환국(桓國)을 세우신 이래로 배달국과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구천 년 넘게 유구한 혈통을 이어 내려왔기에 존재할 수 있단다. 부언하면 환국은 일곱 분의 환인께서 삼천삼백일 년간 다스리셨고, 배달국(倍達國)은 환웅천왕께서 태백산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시고 개국하신 이래로 열여덟 분의 환웅께서 일천오백육십 년간 다스리셨다. 또한, 조선은 신인이신 왕검(王儉)께서 불함산 아사달을 국도로 삼으시고 나라를 연 뒤로 마흔일곱 분의 단군께서 무려 이천구십여 년간 다스리셨다.
* 안파견 - 安巴堅. 환국 초대 환인. 2대 혁서, 3대 고시리, 4대 주우양, 5대 석제임, 6대 구을리, 7대 지위리.
* 사백력 – 斯白力. 현재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인근 지역으로 비정됨.

물론 중간에 백악산과 장단경으로 도읍지를 옮기기도 했단다. 조선은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되었는데 중심은 진조선으로 대단군이 다스리고, 서남쪽의 번조선과 남동쪽의 마조선은 제후국으로 두 명의 소단군이 다스렸다. 현재의 고려는 마조선의 영역에 속했던 영토의 일부이니라. 훗날 우리는 단군께서 다스리던 조선의 모든 영토를 수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동이족의 후손들은 북방 오랑캐나 열도의 서절배(鼠竊輩)에 의해 영토를 침탈당해 시나브로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조선이 멸망하기 전에 진조선의 구물(丘物) 단군 때에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부여로 바꿨다. 그 이후에는 북부여, 동부여가 생겨나고 반도에는 조선의 유민들에 의해 마한, 진한, 변한, 가야 등이 생겨났다. 신라. 백제, 가야는 이 남삼한을 토대로 이합집산의 시기를 거쳤고, 이후에 고구려가 포함되어 삼국시대로 정립이 되었단다.”

여천 선생은 어린 애제자가 경서와 병서 등에 두루 통달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역시 만약 설화가 사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개를 취득하는 설화의 명민함과 일람첩기 능력에 그는 속으로 탄복하였다.

설화가 경서 및 병서에 어느 정도 조예가 깊어지자 여천 선생은 역사의 깊고 복잡한 내력까지 내달렸다. 역사를 배우는 부분에서 설화의 눈빛이 더욱 빛이 나고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여천 선생은 설화에 대한 가르침을 마치면 설화의 할아버지를 만나 담소하였다.

* 일람첩기 - 一覽輒記. 한 번 보면 다 기억한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썩 좋음을 이르는 말.

“손녀가 어느 정도 글을 할 줄 압니까?”

“설화는 이미 공부를 많이 한 유생(儒生)과 같은 수준입니다. 다만, 고려의 과거제도가 사내들만 선발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옛날 한나라 시대에는 여사(女史)라는 관직이 있어 여인들도 관직에 등용된 적이 있었답니다.”

“여천 선생, 나의 마음도 선생과 같습니다. 며느리가 손녀를 낳기 전에 치마폭에 북두칠성의 파군성을 받는 태몽을 꾸었습니다. 나나 그 아이의 아비는 우리 이 씨 가문에서 대장군이 나올 것으로 잔뜩 기대했었지요.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가문에 오로지 그 아이 하나밖에 없답니다. 장차 이 씨 가문을 어찌 이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설화 할아버지는 찻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 길게 탄식하였다. 그의 장탄식에 여천 선생도 답답하기는 했지만 어린 애제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

“어머니, 저는 거란 오랑캐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입산하여 무술을 연마하겠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거란군 장수 아과수란 자를 반드시 제 손으로 죽이고 말 것입니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마을 곳곳에 생생한 가운데 어느 봄날, 설화는 어머니 홍 씨에게 출가하겠다고 했다. 설화는 수백 수천 번을 고민한 끝에 어머니와 상의도 하지 않고 출가하여 무술을 연마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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