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설화에서 설죽화로 개명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원수를 갚고 나서 혼인해도 늦지 않아요.”

“설화야, 너는 사내가 아니야. 그냥저냥 집에서 공부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하거라. 세월은 금방 흐른단다. 네 애비는 운명이 거기까지밖에 안 되는데 네가 어떻게 무술을 배워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는 거야?”

설화의 할머니도 손녀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출가하겠다는 손녀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할머니, 제가 아버지의 원한을 갚아드리지도 못하면 그 죄스러움을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묻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무술의 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거란으로 건너가 아과수란 자를 찾아내 복수할 것입니다.”

설화는 종주먹을 쥐고 흔들어 보였다. 어린 손녀의 입에서 험악한 말이 나오자 이 씨 부부는 무척 놀라워했다. 그러나 손녀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하겠다는 것을 고마워하면서도 출가는 허락할 수 없었다. 이 씨는 손녀가 산채에 기거하면서 사내들과 무술을 연마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려 사회는 여인이 유학을 공부하거나 무술을 익히는 일에는 냉담했다. 딸들은 태어나면 부모 슬하에서 훈육 받으며 얌전히 있다가 혼기가 차면 마땅한 신랑감을 만나 혼인하면 되는 거였다.

‘어찌해야 하나? 내가 손녀의 출가를 허락하면 우리 이 씨 가문은 대가 끊길 것이 뻔하다. 양손을 들이는 일도 쉽지 않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손녀의 출가를 반대할 명분도 약하다. 좋다. 일단 설화의 출가를 허락한 다음에 며느리를 수시로 산채에 보내 귀가하도록 종용해야겠다. 하지만 여라문 날 동안 더 두고 봐야겠어. 혹시 설화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으니…….’

늙숙한 이 씨는 손녀가 고맙기도 했지만 밖으로 속내를 내비칠 수 없었다. 그 역시 무부로 한평생 살았기에 하나밖에 없는 손녀를 전장에 내보낸다는 데에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설화야, 할애비가 좀 더 생각을 해보겠다. 오늘은 그만하자.”

설화는 완고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상대로 한 달 가까이 언쟁을 벌여야 했다. 설화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핏줄이라곤 설화 하나밖에 없는데 출가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이 씨 부부는 절대로 어린 손녀를 출가시킬 수 없었다. 설화는 조부모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듣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가하여 무술을 배워야 한다. 때를 놓치면 나는 영원히 아버지 원수를 갚을 방도가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된다고 하시니 마을 사람들의 입을 빌려야겠다. 할아버지는 남들이 당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 무척 민감하시다.’

날이 풀리자 설화는 조부모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가할 결심을 굳히고 마을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또래 아이들은 물론 우물가에 모인 아낙들에게도 곧 무술을 배우러 출가할 것이라고 했다. 설화는 소문을 크게 내어 할아버지의 반대를 누그러트릴 심사였다. 설화의 작전은 금방 반응을 나타냈다. 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설화의 가출을 화제로 삼았다.

“설화 할아범이 설화가 무술을 배워 아비 원수를 갚겠다는 데 반대한다며?”

“그러게. 당신이 하지 못할 거라면 드팀없는 손녀에게 맡겨보는 것도 괜찮은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일세. 그 노인네가 괴팍한 성격이 아닌데…….”

“설화 할애비는 손주가 없다고 늘 불평을 늘어놓았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는 손녀의 앞길을 막다니, 참으로 이악한 인사일세.”

“설화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검술과 수박 등 무술을 배워서 기본 실력은 탄탄할 거야. 생긴 것도 꽤 암팡지고 몸놀림도 날파람 같지 않은가? 나라면 난딱 허락하겠구먼. 그 노인네가 요즘 정신이 훈훈한가 보네그려.”

“그 애가 겉보기에는 귀인성스러운 데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기 있고 그악스러운 데가 있기도 해. 종시 제 뜻을 펴고 말 거야.”

“그 늙은이가 복에 겨워서 그러는 거야. 사내들도 전쟁에 나가 죽은 아비 원수를 갚으라고 하면 모두 꽁무니를 빼는 세상인데 말이야. 설화가 진정 옹골찬 효녀일세.”

완고하기로 소문난 이 씨도 마을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자신에 대한 비방을 일일이 다니며 막을 수는 없었다. 손녀의 앞길을 막았다가는 자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못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이 씨 부부는 마을 사람들의 들써덕대는 악다구니에 그만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귀주의 젊은 남자 대부분이 전장(戰場)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마을마다 총각의 씨가 말랐고 사내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씨를 탓하는 말은 매일같이 이 씨 부부에게 전해졌다. 이 씨 내외는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손녀를 불렀다. 노부부는 마을 사람들이 들써덕대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이 할애비가 너에게 졌다. 지난 여라문 날 동안 온갖 잡생각이 볶아치는 바람에 발편잠을 잘 수 없었다. 이왕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섰으니 네가 출중한 무사가 되기 전에는 집에 올 생각하지 말아라.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니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구나.

거란 왕 야율문수노와 거란군 장수 아과수는 우리 집안의 철천지원수다. 이제부터 너는 설화가 아니라 설죽화(雪竹花)이니라. 이설죽화. 대나무처럼 고고한 기상과 올곧은 정신으로 피어나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아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출중한 무예를 익히기를 바란다. 너의 고집과 끈기라면 얼마든지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몸조심하고 너의 뜻을 이루어라. 네가 가려고 하는 굴암산에는 여러 산채가 있다. 그중에 동림산채가 도인들도 무예가 뛰어나고 시설도 좋아 유명하다고 하는구나. 지금은 그 산채에 도인이 몇 분이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속세를 등지고 살면서 심신을 수련하고 후학을 길러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고 들었다. 가능하다면 동림산채에 몸을 의탁하고 도인들을 잘 모시고 무술을 익히기 바란다.’

이 씨는 출가하는 손녀를 위해 돈을 마련하여 주었다. 또한, 한 달 전부터 굴암산 자락에 있는 여러 산채에 대해 요모조모를 알아보았다. 그는 무부로 한평생 살아온 입장이라 산속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잘 알았다. 춘삼월이었지만 북방 지역은 사월 말이 지나야 산에 진달래 같은 봄꽃이 피었다. 아침 일찍 설죽화는 집을 나섰다.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설죽화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꼭 무술 고수가 되어 돌아올게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몸 건강히 지내셔야 해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설죽화가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깊이 고개 숙여 하직 인사를 올리는 설죽화의 눈굽이 발깃하고 눈물이 갈쌍갈쌍했다. 설죽화는 섦게 흐느끼면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훔쳐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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