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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총각들의 질투“형씨, 이번 과거에 확실하게 자신이 있는 거요?”전라도에서 온 사내가 혀가 꼬부라진 상태에서 강원도에서 온 남자에게 물었다. 강원도에서 온 남자도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왔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책을 펴놓고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마지못해 등 떠밀려 온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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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7.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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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짇고리 은유송 가 영 1. 골무하늘 아래 죄 없는 자창칼로 날 찌르시오당신은 단 하루라도 뉘 방패 된 적 있었나요두 다리 쭉 뻗는 이 밤도 내 덕인 줄 아세요 2. 바늘그래요, 내 찌르리다그 아집의 정수리를시대의 홰뿔처럼 작아도 날 선 큰 뜻남과 북 뜯긴 솔기도 한 땀 한 땀 기우리다 3. 실아서요, 그만둬요입만 산 눈먼 이여나 없이도 잇고 감고 홀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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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7.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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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합경의 증광시“도령님, 한잔 드셨으면 저에게도 한잔 주셔야지요?”“응? 그, 그래야 하는 거지요?”‘아니 이 사내가 정말 숙맥인가? 아무리 공부만 하는 사내라고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정말. 이거 괜히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닌가 몰라. 외모는 그럴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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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7.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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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염한 야화를 보다“그런데 말이야. 고것이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길은 잘 닦아 놨는지. 손만 대면 자지러지지 뭐야? 아마 우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하실까?”전라도 사내는 방바닥을 쳐가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윤초시 셋째 딸도 어찌나 밝히는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것이 동네 사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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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7.1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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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연이 오다지방에서 올라온 어떤 과거 준비생은 처음부터 시험에 뜻이 없거나 부모·형제의 강요에 할 수 없이 한양에 올라와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대낮부터 주막에서 술을 퍼마시며 소일하거나 기루(妓樓)에 파묻혀 노잣돈을 탕진하기도 했다. 또 어떤 부류들은 노름에 빠져 노잣돈을 모두 잃고 거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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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7.0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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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수첩윤유점바다에서 자란 그대 사모아로 간다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연어 떼무법자 샤치를 밀쳐내며바다는 뜨겁게 달아오른다얼굴을 차갑게 덮치는 물결은 불안정하다코파 높이만큼 치솟는 그물참치 떼의 몸부림은 고물로 기울어진다구름기둥이 몰려오는 스콜에서해안을 덮치는 파고에 선체는 요동치고만선을 꿈꾸는 선부의 생은 처절하다폭풍으로 다가오는 넵투누스가 난폭해지고힘겹게 버티는 난바다의 선부는 제 목줄을 감는다갑판 위로 떨어지는 마지막 명령가늘 수 없는 와이어의 긴장을 끊어 낸다검은 대륙이 다가가면 수평선은 기울어지고순간의 두 다리가 튀어 오른다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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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7.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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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여강을 유람하다조포나루를 떠난 배는 가는 듯 마는 듯 지루하게 한양을 향해 천천히 북서쪽을 향했다. 강 양편으로 보이는 늦가을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다 멀어지기도 하였다. 바람이 약해 사공들이 노를 저어보았지만 겨우 어른들 걷는 속도로 배가 흘러 갈 뿐이었다. 늦은 오후에 박달을 태운 배가 이포나루에 접어들었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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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7.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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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 윤수 귀 속에 넣어 준 말들이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만 같아서나를 들여다보다가 나를 놓치는 밤 노크도 없이 찾아 와빗방울로 사라는 구름떼 그리움으로 무늬지고 있다 두고 온 우리들의 시간도유리창을 흐르는 빗물과 다르지 않아유정과 무정 사이섬 하나 솟았는지 모른다 사랑을 꽃피우던 시간이 꽃진 자리에옹이로 남아 섬이 된 건지 모른다 그 섬이 나를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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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6.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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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驪江)을 구경하다여인 때문에 과거시험에 낙방하였다고 판단한 대길은 여인에게 삼 년만 있으면 틀림없이 과거에 장원급제할 테니 한 번만 더 뒷바라지를 부탁하였지만, 여인은 냉정히 거절하였다. 여인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것이었다. 대길은 충격을 받고 여인과 그 여인의 정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밤, 대길은 비수를 품고 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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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6.2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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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형을 만나다“아, 아닙니다. 난, 뱃멀미해서요.”“원, 사람하고는…….”“정말입니다. 아가부터 뱃멀미가 나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박달은 짐짓 머리가 아픈 척 한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벌써 뱃멀미하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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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6.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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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다“금봉아, 넌 내 딸이기 때문에 이 엄마는 박도령과 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해. 그러니 안심하고 자세히 말해보렴. 난 네가 이제껏 한 번도 남자들에게 서방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어. 내가 언뜻 들으니 네가 박도령에게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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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6.1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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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송병호낙하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쓸쓸하다 수백 번은 아니라도수십 번 서성거렸던 골목 간이주점 그리고중앙도서관, 갈피 잡지 못할 때한 뼘씩 커가는 해그림자에나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황무지에 싹을 틔운 30여 년사랑하는 이들 노동을 완수한 위로랍시고감사의 표시랍시고카드 한 장단아한 분홍카네이션의 초청, 나만 아는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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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6.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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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급제의 꿈“서방니임 -, 기다릴게요. 꼭 돌아오셔야 해요. 매일 서방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도드릴게요.”“금봉이 -, 잘 있구려.”박달은 북쪽을 향해 걸으면서 금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눈물이 이별이 있었던 이등령 고개에 차가운 가을바람이 불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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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6.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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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을 위한 비손“서낭신님, 박달 서방님께서 부디 이번 과거에 장원급제하도록 도와주세요. 서방님께서 장원급제하셔야 하옵니다. 소녀의 마음은 이미 서방님에게 있습니다. 소녀가 앞으로 밤낮으로 빌고 또 빌 테니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이번 과거에 꼭 장원급제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빌고 비나이다. 비나이다.”&ls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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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5.28 0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