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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 꿈이 이루어 지다(13)“도령님-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물레방앗간 안을 은은하면서 가슴설레는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주변 숲속에는 날짐승들도 짝을 지어 밀어를 속삭이느라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난생처음으로 사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한별은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하기를 속으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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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1.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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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퇴강희정드르륵 교실 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내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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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1.1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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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꿈속의 정인을 확인하다“나도 언젠가부터 인지 낮잠을 잘 때면 어떤 묘령의 여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었답니다. 몇 번 그런 꿈을 꾸었는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여인이 바로 한별 낭자 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박달은 그림 속의 여선(女仙)을 그려보았다.“어머나, 그게 정말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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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1.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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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예정된 인연요희가 즉석에서 시를 읊었다. 시를 읊는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낭랑하고 고운지 목소리가 금방 옥구슬로 변하여 떨어질 것 같았다. 악사들이 요희가 시를 읊을 때 반주를 넣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밤안개 물러가 허허로운데태산에 걸린 가녀린 그믐달만 바라보네달 속에 옛 정인이 앉아 있지만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술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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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1.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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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에게 말할 수 없는한연희어젯밤 한 여자는 죽기로 했었는데두부 한 모 때문에 철학자가 되었는데그만 두부를 뭉개버리고 말았단다철저하게 으깨진 두부의 형태를 연구합니다두부는 어제 맞아 죽은 이웃집 개를 닮았습니다곤죽이 되어버린 얼굴은 더 이상 얼굴일 수가 없습니다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철학자는 두부를 오래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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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1.12.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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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남선과 여선 박달이 과거를 위해 책과 씨름을 하다가 잠시 피곤하면 낮잠을 자곤 했다. 그런데 그의 꿈에도 묘령의 여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 기이한 꿈을 서너 번 꾼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박달은 그 꿈을 잡몽(雜夢)으로 치부하고 했었다.박달이 공부하는 고향 집 사랑채 벽에 신선도(神仙圖)가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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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효
2021.12.2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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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비몽사몽간 “저어…….”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도령님, 말씀하셔요.“…….""괜찮습니다. 말씀하시어요."“한별 낭자, 이것도 인연입니다. 저는 늘 천지신명님에게 저의 배필이 될 여인과 인연을 맺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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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1.12.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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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몽중인과 운우한별은 어려서 어머니 봉양댁과 자주 외할아버지댁에 다녀오곤 했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밖으로 나가는 일이 부담스럽고 귀찮아지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또래 사내들과 여자 친구도 서너 명 있었다. 한별이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봉희였다. 그녀는 한별과 마음이 잘 맞고 부모들도 서로 왕래가 잦았다.&l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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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1.12.1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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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정희안우선 헐거워진 안구부터 조여야겠어 의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 네모난 메모는 너무 반듯했어 느슨해진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떨림이잖아 사랑은 사탕 같은 것 길이와 깊이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잠들지 않고 꿈을 꿀 순 없잖아 달리자는 남자와 달라지는 남자 수순은 잘못되었지만 수준은 비슷해 일용직 알바생의 심정을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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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1.12.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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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물레방앗간 정사“소녀도 잠이 오지 않아 바람 쐬려고 잠시 나왔습니다.”금봉이 고개를 푹 숙이고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박달은 한별이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남녀가 유별한데 혹 누가 볼까 두렵습니다. 우리 저쪽으로 걸어요.”박달이 가리키는 곳은 컴컴하게 숲속으로 난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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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1.1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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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소녀의 기도 안동, 영양, 봉화, 울진, 영주 등에 거주하는 영남지역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려면 죽령(竹嶺)을 넘어 제천의 험준한 시랑산의 이등령을 넘어야 하므로 수백 년 동안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는 수많은 영남 선비들은 제천 땅 이등령에 무수한 발자국 남겼다.그러나 험준한 재를 넘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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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1.11.2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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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가 고독에게박소미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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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1.11.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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