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달을 위한 비손“서낭신님, 박달 서방님께서 부디 이번 과거에 장원급제하도록 도와주세요. 서방님께서 장원급제하셔야 하옵니다. 소녀의 마음은 이미 서방님에게 있습니다. 소녀가 앞으로 밤낮으로 빌고 또 빌 테니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이번 과거에 꼭 장원급제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빌고 비나이다. 비나이다.”&lsqu
기고
최재효
2022.05.28 08:49
-
서귀포 외돌개배한봉파랗게 올라가 하늘이 된바다가 있다파랗게 내려가바다가 된 하늘이 있다그 어느 옛날 그 어떤 전설이바람의 형상을 새기고눈비의 형상을 새겨서바다 한가운데 돌섬 하나 세워 놓고혀 밑의 노래를 꺼내 부르는 곳.오름들도 알고 있고바다를 깨우는 숨비소리도 알고 있지천 개의 눈을 뜨고 바람을 보는 하늘,천 개의 귀를 열고 눈비를 듣는 바다,밤과 낮과
기고
명서영
2022.05.26 09:14
-
성황신에게 빌다“낭자,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어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박달이 금봉에게 다가가 작별의 인사를 건네자 금봉은 손가락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부모가 지켜보지 않는다면 박달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었다. 박달 역시 말없이 훌쩍거리는 금봉을 안아 주고 싶었다.“낭자, 얼른 가서
기고
최재효
2022.05.21 10:17
-
별루첨첨(別淚添添)금봉은 아침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 반찬 저 반찬 젓가락으로 집었다 놨다 하며 밥을 먹지 못했다. 그런 딸의 모습에 금봉 어머니는 가슴이 답답하고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했다. 조반을 마친 박달이 짐을 꾸리기 위해서 사랑채에 들자 금봉이 박달의 옷을 들고 사랑채로 들었다.“이 옷으로 갈아입고 떠
기고
최재효
2022.05.14 07:33
-
퍼즐 맞추기-우체통강중훈모년 모월 모일 모시 모처에서 그녀가 나를 찾는다는 소식이 왔을 때는 그 일이 있고난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빨 빠진 돌담장사이로 그녀의 소식은 언제든 새어나가 배달되지 못했습니다사람들은 그 연유를 바람 탓이거나 반 박자 놓친 그리움 혹은빼곡히 총탄 박힌 옥수수 열매가 반나절 넘게 담장에 갇힌 체 숨죽인 늦가을 햇살 탓이라고 했습니
기고
명서영
2022.05.09 10:57
-
회자정리(會者定離)금봉은 아침 일찍 박달을 떠나보내야 하므로 깨끗하게 빨아서 곱게 개어둔 박달의 의복을 가지런하게 꺼내놓았다. 아침이 되었지만 안개가 산촌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최대호가 박달을 깨웠다.“박도령, 일어나시었소?”“네에. 일어났습니다.”박달이 눈을 비비며 문을
기고
최재효
2022.05.07 10:05
-
-
-
이별의 정한(情恨)딸의 비손하는 소리를 엿듣던 금봉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맥이 빠져 곧 그 자리에 쓰러질 것 같은 것을 억지로 버티고 섰다. 침착하고 얌전한 줄 알았던 딸이 며칠 사이에 근본을 알 수 없는 과객과 정분이 났다는 것을 금봉 어머니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아냐, 내가 뭘 잘못 들었을 거야
기고
최재효
2022.05.02 09:34
-
페인트 공 성영희그에게 깨끗한 옷이란 없다한 가닥 밧줄을 뽑으며 사는 사내거미처럼 외벽에 붙어어느 날은 창과 벽을 묻혀오고또 어떤 날은 흘러내리는 지붕을 묻혀 돌아온다사다리를 오르거나 밧줄을 타거나한결같이 허공에 뜬 얼룩진 옷얼마나 더 흘러내려야 저 절벽 꼭대기에깃발 하나 꽂을 수 있나저것은 공중에 찍힌 데칼코마니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작업복이다저렇게 화려한
기고
명서영
2022.04.28 09:00
-
천지신명께 장원급제를 빌다.“고, 고마워요. 금봉 낭자. 내,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박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음속으로 흐느끼는 금봉을 위무해 주고 싶었으나 어른들이 있어 차마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박도령, 급제하시고 고향 가시는 길에 이 마을 지나가야하니 시간이 허락된다면 우리 집
기고
최재효
2022.04.23 08:54
-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아아, 도령님, 이 순간 소녀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영원히 도령님 등에 업혀 가고 싶어요. 아무도 없는 그런 곳으로 가서 천년만년 살고 싶어요. 그러나 곧 떠나가실 도령님을 생각하면 소녀 눈앞이 캄캄하옵니다. 도령님, 소녀는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요?'흑-.금봉이 박달의 등에
기고
최재효
2022.04.16 08:43
-
-
*어떤 식목손순미사각의 관(棺) 하나를 땅에 심었네 슬픔은 모르는 척한줌의 흙으로 던져졌네 사람들은 몸 속에서 투명한울음을 꺼내 골고루 뿌려주었네 그의 생은 흠뻑 젖었네 한 장의 햇살이 달려왔네 그의 생애를 따뜻하게 덮어주었네 그는 작은 씨앗 하나로 돌아갔네 그 씨앗 속에혼돈과 좌절과 영광으로 우거진 거대한 숲이 밀봉되어있네 수목장(樹木葬)을 하는 그림이
기고
명서영
2022.04.12 09:58
-
견우와 직녀견우는 소를 몰고 서쪽을 향해 구만 리 길을 떠났고 직녀도 정든 하늘나라 궁궐을 떠나 외로운 발걸음을 떼어 놓았습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가슴은 찢어질 둣이 아팠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은하수라는 깊고 깊은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견우는 매일 은하수에 나와 사랑하는 직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고
기고
최재효
2022.04.09 08:53
-
지고지순한 사랑“우리가 그런 이야기 말고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면 되잖아요.”“사랑 이야기?”박달은 금봉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시선을 맞추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자신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처지를 잠시 잊은 듯 금봉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기고
최재효
2022.04.02 07:53
-
-
성황신에게 빌다.“도령님, 저 길로 곧장 올라가면 이등령이 나와요.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영남지방 선비들이나 장사치들이 이 길을 지나가면서 이 성황당 앞에 잠시 서서 각자의 소원을 빌곤 한 대요. 제가 도령님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니 부디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고마워요. 내, 그대를 생각해서라도 꼭 과
기고
최재효
2022.03.26 08:03
-
가죽 구두손순미늙은 소의 발을 굽는다늙은 아버지의 발을 굽는다토막난 아버지의 발을 잡고아버지의 삶을 다듬기 시작한다검은 육질에서 기름이 돌기 시작한다탕약처럼 검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온아버지 평생의 켤레,아버지 고통의 부위가 누릿하게 익어간다나는 아버지의 삶에 지나친 광택을 낸다아버지 평생의 車, 아버지 구두가모처럼 호사를 한다반짝! 아버지의 영광은 짧았다사
기고
명서영
2022.03.25 10:37
-
천생연분‘저 사람이 우리 금봉이와 짝을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꼬. 내 눈에는 금봉이와 천생 연분처럼 보이는데…….’금봉의 아버지 최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궐련을 피우면서 혼자 속으로 말하였다. 박달의 글 읽는 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산촌에 여간해서는 글 읽는 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잠을 제대
기고
최재효
2022.03.19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