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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노인(하)그는 축 쳐진 어께를 하고 여관에 돌아왔다. 그래도 학문을 한 사람인데 비록 양가집 규수는 얻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중류 가정의 아리따운 처녀 정도는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추하고 더러운 아이를 그것도 오래오래 기다려 결혼하다니 생각할수록 위고로서는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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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3.12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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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자주 발음하는 이유김선호희망 하고 발음을 한다벌어진 꽃잎이 잘 여문씨앗 몇 톨 움켜쥐듯내 입술은 피어나는 꽃잎이 된다끝하며 앙 다물어지는 입술과는 달리마앙 하며 벙긋이 벌어진 입 속으로도무언가 다시 들어 올 것만 같다희망 희망 하다보면잿빛 울타리를 벗어난 내가장미정원에서 열린 파티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고포물선을 그리던 주식이수직상승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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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3.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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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노인(상)“도령님, 소녀와 도령님의 인연은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전생에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인연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저 하늘에서 휘영청 밝은 빛을 내며 이곳을 비춰주고 있는 저 달님이 우리 사이를 맺어준 죽매인이랍니다.”“달님이요? 달님이 어떻게 소녀와 도령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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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3.0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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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주변에서 풀벌레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다니던 길이라 눈을 감고서도 달릴 수 있지만 밤길을 혼자 걷는 것은 다 큰 처녀에게는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행여 불량기 있는 사내들을 만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물레방앗간에 거의 도착하였지만 박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디 계신 걸까?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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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2.2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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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다보송하담아버지는 목수였다팔뚝의 물관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나무와 나는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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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2.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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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앗간의 역사“아니, 당신도 참. 지금처럼 해주면 되었지 어떻게 더 잘해 주란 말이에요?”금봉의 어머니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금봉의 부모는 금봉이 비록 무남동녀 이지만 산촌에서 보기 드물게 고운 여식이 산골에서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쩌다 동네에 대처에서 놀러오거나 마을에 친척집을 찾는 총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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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2.1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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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의 은인들 '어서 여기를 떠나 한양으로 가야하는데…….'박달은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한양에 도착하여 과거준비에 몰두해 있어야 했다. 아직 날짜가 남아 있어 그런대로 여유는 있지만 평동 벌말에 발이 묶인 박달은 답답했다. 금봉은 저녁을 일찍 준비하여 박달에게 차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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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2.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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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금봉, 치성을 드리다.“도령님, 저는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영원히…….”사내의 거칠면서 부드러운 율동이 방안을 금방 열락의 도가니로 변하게 하였다. 간밤의 첫 정사에서 비록 금봉은 희열을 느끼지는 못하였지만, 잔잔한 기쁨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성스러운 두 사람의 몸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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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2.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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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록체에 대한 기억이경주숲을 떠난 푸른빛의 기억이 갇힌 방으로 들어간다형광등 불에 달궈진 자갈과 모래알들이 바닥에 깔리어전갈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있다마른 바람이 눈에 익거나 때로는 낯선 발자국들을 지우는 한낮에는미세한 먹이사슬들이 잠깐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얗다종일 내리쬐는 빛은 벽에 박힌 나무들의 뿌리와그걸 바라보는 죽은 새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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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2.0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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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꿈이 이루어 지다(하)‘아아, 달빛에 비친 선녀의 모습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간밤에 있었던 일은 꿈이 아니었어. 내가 정말로 나무꾼이 된 것인가?’박달은 한별 아가씨의 청초한 모습에 넋이 나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대개의 여인은 밤과 낮에 모습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한별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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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1.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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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박재숙침대에게 몸으로 물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관습 따위엔 관심 없어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여전히 아지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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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01.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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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령 전설 꿈이 이루어 지다“우리는 이미 부부로 맺어질 운명인가 봅니다. 서로 기인한 꿈으로 인연을 맺는다는 일은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춘의 정염(情炎)을 꺼질 줄 모르고 활활 타올랐다. 두 몸이 타고, 물레방앗간도 타고, 천지가 뜨겁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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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01.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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